윤동주 시를 일본 교과서에 수록한 여류시인
100만 독자가 추천한 일본의 멋쟁이 시인
한국인과 교류하고, 한국과 한글과 윤동주를 사랑한 시인
윤동주의 시는 어떻게 일본 교과서에 실렸나
스타북스가 도서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개정판을 출간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이 시 한 편으로 ‘1억 일본인들을 패전국 상처에서 구해 희망의 길로 인도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극찬한 이바라기 노리코는 평생 한국을 사랑하고 한글과 한국인과 한국의 시인 윤동주를 너무 사랑해서 무려 7년을 설득해 윤동주 시 4편을 일본 교과서에 실리게 한 멋쟁이 시인이다.” -민윤기 시인(서울시인협회 회장)
최초로 죽는 날 공개하라면서 미리 감사와 함께 이별의 인사말을 남긴 시인
“‘그 사람이 떠났구나’ 하고 한순간, 단지 한순간 생각해 주셨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랫동안 당신께서 베풀어 주신 따뜻한 교제는, 보이지 않는 보석처럼, 나의 가슴속을 채워서, 광망을 발하고, 나의 인생을 얼마만큼 풍부하게 해 주신 건가…. 깊은 감사를 바치면서, 이별의 인사말을 드립니다. 고마웠습니다. 2006년 3월 길일.”
이바라기 노리코는 2006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일본 시는 희로애락 가운데 노가 없다. 그러나 한국 시에는 그 노가 있다”며 “일본에는 서정시인만 있다. 시인의 사회적 영향력도 한국에 비해 미약하다”고 말했다. 일본 시인들을 향해 이렇게 거침없는 비판을 할 수 있는 지식인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했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의 나이는 열아홉 살이었다. 그 이듬해 그녀는 지금의 토호대학인 제국여자약전 약학부를 졸업한다. 말이 대학이지, 여학생들은 전쟁에 동원돼 해군 약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이른바 ‘군국주의 정신대 소녀’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동인지 ‘카이’를 창간하고, 1955년에 출간한 첫 시집‘대화’에 수록한 시에서부터 넘치는 상상력을 보여줬다.
이바라키 노리코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그녀가 32살 때 20대 초기를 회상하며 쓴 시로, 일본 국정 교과서에도 실렸다. 온 거리가 대공습으로 와르르 무너진 건물 안에서 천정을 보았을 때 “파란 하늘같은 것”이 보였다는 증언으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죽어가는 사람들, 전쟁에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그녀는 이 전쟁을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단정 짓는다. 남자도 흉내 내기 힘든 대담한 표현이다. “비굴한 도시를 으스대며 쏘다녔다”는 표현처럼 그녀는 자유롭게 활보한다. 마지막 연에 나오는 루오 역시 뒤늦게 명성을 얻은 할아버지 화가다. 루오처럼 “뒤늦게라도 청춘을 즐기고 싶다”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시인은 역경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노래로 이 시를 승화시키고 있다.
한글의 매력에 빠져, 죽을 때까지 윤동주와 한국을 사랑한 이바라기 노리코
서정시의 대표작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식탁에 커피향 흐르고’, ‘여자의 말’
이바라기 노리코는 한국인과 교류하고, 한국과 한글과 윤동주를 사랑한 가장 매력적인 일본의 여류시인이었다.
(중략)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이런 엉터리 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다
나는 무척 덤벙거렸고
나는 너무도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될수록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 시뿐만 아니라 이바라기 노리코가 발표한 많은 시는 역사적 어둠과 비극적 현장을 생생하고 분명하게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의 수많은 사람들이 대지진의 도쿄에서/ 왜 죄 없이 살해되었는가”(‘쟝 폴 사르트르에게’)라며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을 증언한 시도 발표한다. 이 시는 “잘 안 되는 것은 모두 저놈들 탓이다”라며 일제 강점기 시절 유대인 못지않은 박해를 받다 온 한국인이 당한 아픔을 어느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인식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표현 속에도 패배주의적 비장감은 없다. 오히려 낙관적이다. 밝다. 바로 이런 점 덕분에 전쟁의 풍경을 숨 막히는 비극적 어둠으로 표현하는 다른 시인들과 달리, 이바라기 노리코는 이 한 편의 시만으로도 전후 시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열었다는 평을 얻었다.
(중략)
잘 안되는 것은 모두 저놈 탓이다
조선 사람들이 대지진이 난 동경에서
왜 죄 없이 살해당했는지
흑인 여학생은 왜 칼리지에서 배우면 안 되는지
우리들조차 누군가가 잡은 총에
겨누어지고 있지 않은지
나에게는 한꺼번에 알 수 있는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참혹한 사건의 가지가지가
사르트르씨
나는 당신을 깊이 알고 있지 않다
유대인의 생태生態도 표정도 친숙하지는 않다
인간에 대한 전율이 또 하나 늘어났지만
여하튼 지금 있는 것은 순수한 하나의 기쁨!
(중략)
- 이바라기 노리코 ‘장 폴 사르트르에게’
일본의 한국 식민지 통치의 상흔을 묘사한 또 다른 시도 있다.
한국의 노인은
지금도 변소에 갈 때
조용히 허리를 일으키며
“총독부에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조선총독부에서 호출장이 오면
가지 않고는 못 배겼던 시대
어쩔 수 없는 사정
- 이바라기 노리코 ‘총독부에 다녀오다’ 전문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는 한국인이 겪은 역사의 상흔과 아픔을 잘 어루만진다. 목소리가 높지도 않으면서, 조곤조곤 풍경 속의 작은 에피소드를 등장시켜 실감 나게 조선총독부 치하의 한국인들이 겪었을 치욕을 그리고 있다.
이 밖에 자의식에 관한 유명한 시도 있다.
더 이상 야합하는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 이바라기 노리코 ‘기대지 말고’ 전문
사람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해야 살 수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그리고 친구나 연인 같은 동조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바라기 노리코 시 속의 ‘기댐’은 ‘비굴한 야합 수준의 기댐’을 말한다. 시인은 사상이나 종교나 학문, 그리고 권위에 기대는 것은 야합이라고 한다. 결국 이 시는 기대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떳떳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도서 정보
제목: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개정판)
지은이: 이바라기 노리코
옮긴이: 윤수현
쪽수: 136쪽
가격: 1만2000원
출판: 스타북스
자료제공: 스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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